[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골목길에서 보이는 것들
[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골목길에서 보이는 것들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7.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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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불쑥 나오는 갱년기를 데리고
나선 골목길에서
오롯이 나를 찾는 시간을
시작하려 한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어제 폭포수처럼 내리던 비는 오늘은 얌전한 얼굴로 다가선다. 오늘, 변덕스러운 사람의 모습을 닮아 친근하게 옆에 선 하늘은 어제 광란의 시간을 쉽게 잊으라 한다.

요즘 내 마음은 어제처럼 소용돌이치는 비와 바람 같다. 오늘의 날씨를 닮은 나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 어색하지 않고 늘 친근하다. 그런데 어제의 비처럼 예측이 힘든 마음이나 감정이 근래에 새로이 생겨났다. 너무나 충동적이고 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기도 해서 당혹스럽고, 때로는 저 끝도 알 수 없는 바다 속 같이 어둡고 고요해서 적응이 힘든 것을 세상에서는 갱년기라고 부른다. 언제부터 내 속에서 자라 이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던 본래의 나조차 집어삼키려고 한다. 분명 내 안에 있었다면 내가 만들어 키워 왔을텐데 미리 알지 못하고 그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아우성칠 때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냥 열심히 살면 그것이 최선이라 여기며 사는 동안 내 안에는 내가 없었다. 이제라도 난 나를 찾아 길을 나서려고 한다. 불쑥불쑥 나오는 이 갱년기를 데리고 조용한 골목길을 찾아 거닐어 보려고 한다.

나는 큰 길을 돌아서 끝도 잘 보이지 않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이제 막 들어서고 있다. 그 길 군데군데 보이는 집들의 사람냄새와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익숙한 나무들에게 한껏 정을 느끼고 더 깊숙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간혹 만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그 골목을 예전부터 걸었던 사람들, 살고 있는 사람들, 나처럼 막 그 길을 들어서는 사람들…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나는 그 끝에 분명 나와 상관있는 행복한 일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는 그 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사실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도 남들이 닦아 놓은 평탄한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고 규범이었다. 남들의 이야기 속에서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는 것도 싫었다. 또한 남들의 이야기로 내 시간을 빼앗기기도 싫어서 오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걸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작은 상자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그 상자를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힘차게 그 골목에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 골목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이한다. 그 옛날 마르코폴로가 동방을 향했던 것처럼 그의 이름을 딴 홍차를 우려서 마신다. 긴 호흡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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