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오래된 지혜, 차선의 선택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오래된 지혜, 차선의 선택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 승인 2021.04.08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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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인간이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는 길이 네 가지가 있다. 최선과 차선, 차악과 최악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선택의 길은 어쩌면 인간사회의 가장 오래된 지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 차선의 선택(the second best)은 그리스 시대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진행된 논쟁에서 비롯되어 서양의 정치적 교양으로 자리 잡았다. 플라톤은 정의를 규정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천성에 가장 적합한 한 가지 일에 전념하고 타인에게 적합한 일은 간섭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무슨 일에 적합한지는 가리는 일은 초월적 지식을 가진 철인왕(the philosopher king)만 가능하므로, 정의에 입각한 강제적 규범 즉 법으로 통치하는 일은 차선에 불과하다고 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초월적 지식을 갖춘 철인왕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면서 오히려 비인격적인 법의 통치가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토론이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차선의 지혜’로 불리어 왔다.

이번에 치러진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 선거 결과는 집권여당의 참패로 나타났다. 두 지역 모두 서울과 부산 18%, 28%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야당후보가 압승을 했다. 서울의 25개 선거구, 부산 16개 선거구 모두 이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 모두 자성론과 신중론 등의 해석에 분분하긴 하지만 야권 압승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권심판론이 특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권의 폭주가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야권이 과연 잘해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과연 민심이 이번 선거에서 던진 시그널은 무엇일까? 여기서 차선의 선택(the second best)이론이 적용된다. 오히려 차악의 선택(the less of two evils)이론이 적용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논리지만 집권 여당이 더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덜 마음에 들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한 선거가 된 듯하다.

나심 탈레브는 ‘Skin in the Game’이란 책에서 인류의 오래된 지혜로 인지부조화, 손실 회피 성향, 부정의 길, 현실참여와 책임, 시간의 중요성, 집단광기, 적은 게 많은 것, 과신 금물 등 9개의 지혜가 있다고 정리했다. 또 그 지혜는 경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권이 삼킨 지혜의 독이 제법 된다. 우선 내가 듣기 싫은 소리는 외면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무시했다. 즉 ‘인지부조화’다. 아무리 잘해도 한번 실수를 하면 모든 걸 잃는다. 출마를 위해 당헌까지 개정했다. ‘부정의 길’에 해당된다. 가려운 곳을 가장 잘 긁을 수 있는 건 자기 손톱인데 내부 비판을 외면했다. ‘현실참여와 책임’에 해당된다. 말이 많으면 억지 주장도 늘어난다는 ‘적은 게 많은 것이다.’라는 지혜에는 ‘생태’와 ‘페라가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차선의 지혜다. 최선도 아니고 문제점도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선거를 통해 꽃을 피우는 것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도 이 같은 지혜가 진리라는 점이 다시 입증되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인간의 오래된 지혜가 주는 시그널을 외면하면 민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권력에 대해 견제의 화살을 날린다. 180석이란 역사적인 압승을 거둔 여당이 불과 1년도 안 된 시점에 그다지 잘한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야당에게 대패한다는 사실은 차선의 지혜에 해당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인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망각한 오만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는 9번째 지혜인 ‘과신하지 마라’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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