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질매재의 추억
[오! 사랑] 질매재의 추억
  • 경남미디어
  • 승인 2019.02.22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나에게 질매재는
벚꽃만 아름다운 고개가 아니다
10살 소녀 적 우리 엄마의 추억과
6.25전쟁 때 희생되신
고모할아버지 고모할머니가
연상되는 고개다
정명숙 영어강사
정명숙 영어강사

“엄마, 우리 들깨칼국수 먹고 갈래요?” 엄마가 평소에 들깨 탕을 좋아하셔서 진주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응, 그라자. 그란데 이리가모 식당이 있나?” 친정집에서 진주로 향하다가 차를 진성 방향으로 내려오니 엄마가 물어 보셨다. “봄에 벚꽃 구경 왔다가 친구들하고 저기 고갯길 옆 식당에서 들깨칼국수 먹어 봤는데 맛있더라. 먹어 보이시더.” 점심때가 좀 지나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다. 주문한 들깨칼국수가 바로 나오고 엄마는 양이 많다고 하시더니 거의 한 그릇을 비우셨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질매재를 따라 올라가는데 엄마가 내게 또 물어 보셨다. “여가 달아산 고갯길 맞제?” “응, 월아산인데 달아산이라고 해도 맞겠네요. 왜?” 내가 물으니 엄마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옛길을 찾는 듯이 말하셨다. “여가 내가 9살인가 10살 때 시집 안간 작은 고모랑 둘이서 진주고모집에 간다고 넘었던 고개 아이가. 아침 묵고 출발해서 하루 내내 걸어서 이 고갯길을 오르고 또 한참을 걸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진주고모집에 갔었다.” “옥봉동 고모할머니 말입니꺼?” 내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엄마는 이미 10살 소녀가 되어 그 옛길 위에 서계신 듯 답하셨다. “그때는 옥봉동 그 집에 안 살았고, 우리 고모부가 일본서 마이 배운 사람이고 큰 여관을 해서 돈도 많아 큰집에서 잘 살았다. 진주고모가 아가 없어서 그런지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셔서 그 먼 길을 몇 번인가 걸어서 갔던기라.” 나는 진주 고모할머니를 몇 번 뵌 적이 있다. “고모할머니 아들 있잖아?” 그러자 엄마는 “그 아들은 재가해서 낳은 아들아이가.”라고 하셨다. “왜? 많이 배우고 돈 많은 고모할아버지는 우짜고?” 나는 고모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엄마는 외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고모할머니에 대해 말해주셨다. 왜정 때 먹고 살기가 힘들어 외가가 일본으로 건너갔었다고 한다. 거기서 외삼촌, 엄마, 이모들이 태어나고 엄마가 6살 때 해방이 되어 외가식구들은 일본서 결혼한 고모할머니 한 분만 일본에 두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때 엄마의 진주고모는 일본에서 번 돈으로 진주에서 큰 여관을 운영하는 고모부와 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6.25사변이 나서 인민군들이 쳐들어 왔고 고모할아버지가 미군 앞잡이라고 처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때 고모할배가 뭐했는데?” 내가 물었다. “미군들한테 통역인가 뭔가 했다는데 여관하고 집도 다 뺏기고 사람은 잡아가서는 죽여 버렸다 하더라.” 엄마도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라 자세히는 모르시는 것 같고 고모할머니가 불쌍하게 혼자되었다는 사실에 잠깐 목이 메는 듯 했다. “그라고 좀 있다가 전쟁 때 마누라 잃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서 재가했던기라.”

팔순이 다되신 엄마는 10살의 소녀로 돌아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진주 고모를 만나러 갔던 옛길을 그리며 질매재를 넘었고,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전쟁의 희생물이 되신 고모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길을 넘었다. 그리고 내가 듣고 배웠던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나의 외가 가족들이 살았고 또한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질매재는 벚꽃만 아름다운 고개가 아니다. 10살 소녀 적 우리 엄마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진주고모를 만나러 갔던 모습이 그려지는 고개이고, 전쟁에 희생되신 고모할아버지, 고모할머니가 연상되는 고개가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