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진주냉면과 김영복
[하동근칼럼 東松餘談] 진주냉면과 김영복
  •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승인 2021.06.22 13: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하동근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전 imbc 사장

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연옥 냉면, 박군자 냉면, 황포 냉면 등으로 대표되는 진주의 냉면집들도 요즘 식사시간이면 문전성시로 줄을 잇는다. 해물 육수와 육전 고명. 그리고 녹두전분과 메밀이 7대 3의 비율로 들어가 약간은 굵으면서 졸깃하고 짙은 색의 면발이 특징인 진주냉면은 특히 면과 고명의 양에서 압도적인 풍성함을 자랑하다. 먹다보면 일반 냉면이라면 벌써 한 그릇 다 비웠을 시간임에도, 진주냉면은 아직 반 그릇이나 남아있는 볼륨이다. 깊게 우러난 해물 육수의 감치는 맛 또한 혀끝을 희롱한다.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시원하면서도 느긋한 만복감이 밀려온다. 섬세하고 얌전한 평양냉면과는 맛과 품세가 확연히 다르다.

진주냉면을 재현, 개발 보급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식생활 문화연구가 김영복씨를 최근에 만나 뒷얘기를 들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의 육전 고명이 올라가는 진주냉면은 지난 2000년 진주시와 부산방송, 그리고 당시 지역 향토음식 발굴과 연구 활동을 하던 자신이 합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진주냉면을 찾아서’라는 TV 방송프로그램 방영을 계기로 탄생한 재현음식이라고 했다. 이는 1966년 진주 중앙시장 대화재 이전에 영업을 했던 수정, 평화, 은하식당 등 기존의 냉면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새로운 냉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진주냉면 원조라고 일컫는 황덕이 할머니의 부산식육식당 조차 김영복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일반 고깃집 후식냉면을 팔았다고 하니까 어찌 보면 1985년 발행된 한국요리 문화사에 소개된 옛 양반가와 교방문화의 전통 진주냉면은 사실상 대가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김영복씨 자신도 진주냉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99년 중국 연변의 도문을 여행하다가 현지의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의 뒤처리용 휴지로 쓰던 북한의 어느 책갈피에서 ‘조선 제일의 냉면은 평양과 진주냉면’이라는 글을 우연히 읽고서였다고 했다.

그가 밝힌 진주냉면의 재현작업은 문헌과 구전 등을 고증하는 작업도 작업이지만, 진주냉면을 만든 경험자를 찾는 일부터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폐업한 냉면집의 토지대장까지 뒤져가면서 관련자를 추적하고, 수소문 끝에 찾아낸 진주냉면의 유경험자는 모두 세 명. 다음은 레시피를 재현하는 과정이었다. 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대로 각각 냉면을 조리하게 했다. 그리고 조리순서와 방법을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공통점을 모아 하나의 조리법으로 정립했다. 이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 해물 육수와 육전 고명이다. 해물 육수는 옛날 바닷가에서 멸치육수를 우려내듯이 800도에서 1000도로 가열한 무쇠 덩어리를 육수에 집어넣어 순간가열 하는 방법으로 해산물의 잡냄새를 없앴고, 멸치를 대신해 디포리를 넣었다. 또 진주 전통의 헛제삿밥에서 힌트를 얻어 육전을 값비싼 석이버섯과 전복, 해삼 등을 대신한 고명으로 올렸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진주냉면의 새로운 레시피는 95년부터 2003년까지 서부시장에서 ‘부산냉면’이란 상호로 냉면을 팔던 황덕이 할머니에게 보름에 걸쳐 전수되었다. 황덕이표 냉면은 이후 ‘진주냉면’으로 간판을 바꾸었고 딸과 며느리가 가업을 이어받아 ‘하연옥’, ‘박군자 진주냉면’ 등의 이름으로 지난 20년간 꾸준히 성장해 이제는 진주냉면을 대표하는 전국구 브랜드가 되었다. 올해 75살의 김영복씨는 지난 50년간 자신의 향토음식 연구 인생에서 가장 뜻있는 일이라면 진주냉면을 외식산업으로 정착시킨 일이라고 했다. 그는 향토음식 대중화의 성공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우선 개발한 음식을 30초 이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재료값이 싸야 하며 계절도 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 음식을 빨리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고 향토성이 강해야 한다고 했다. 진주냉면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음식이어서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성공사례로 하동의 참게 가리장국을 들었다. 진주냉면의 성공스토리처럼 개발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아직도 잠자고 있는 지역의 우수한 전통음식은 없는지 우리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먹거리도 결국 마케팅이고 스토리텔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