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행복보험 들기
[정용우칼럼] 행복보험 들기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1.12.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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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겨울에 접어들면 따뜻한 햇살이 자꾸 그리워진다. 하여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오늘 일기예보부터 챙겨본다. 해가 떠오르는지, 구름이 잔뜩 끼는지….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는 한 햇빛만 방안으로 비쳐들면 하루 일상은 기분 좋게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맑다. 구름 한 점 없으니 곧 해가 반가운 아침 선물을 한아름 안고 떠오를 것이다. 과연 아침식사를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오니 해가 떠오르면서 방안이 환하다. 겨울 햇살이라 방안 깊숙이 들어온다. 밝은 햇살 덕분에 ‘죽비소리’(정민 교수 지음)를 꺼내 읽는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지만 언제 봐도 좋다. 책을 읽어나가다가 마음속에 꼭 새겨두고 싶은 문장 하나 만난다. 선인들의 옛 거울에 내 삶의 흔적들을 비춰본다. 덕지덕지 쌓인 때가 씻겨지는 듯하다. 이럴 땐 기쁨에 들떠 의자에서 일어나 뒷짐 지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한다. 행복한 순간이다. 무슨 엄청난 즐거운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이미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상태. 돈 주고 살 수 없는 행복감, 계량화할 수 없는 행복감이다. 버지니아 울프도 이런 행복감을 자주 맛보았던 모양이다. 그의 단편소설 ‘인류를 사랑한 남자’에서 ‘진리는 있는 법. 다들 입 밖에 내길 두려워하는 그것은 바로 행복이란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공짜로 행복을 얻을 수도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며칠 전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읽은 기사 한 토막. 그 내용은 이렇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올해 전 세계 17개 선진국 1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각국 응답을 평균 내보니 ‘가족’ ‘직업’ ‘물질적 풍요’ 순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물질가치의 중요도를 선진국은 물론 저개발국 사람들보다 높이 평가한다는 갤럽의 130개국 조사 결과도 있다. 나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대개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기사화된 내용을 보고서 약간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변했다.

하긴 작금의 나라 현실을 직시할 때 이런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돈으로 인한 낭패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치솟는 집값에 수많은 국민이 느끼는 좌절감. 영끌을 해도 집 장만이 어려운데 누구는 아파트로 10억, 주식으로 몇 배, 코인으로 수십 배 이익을 챙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행해진다. 이래서 행복감은 물질적 풍요와 크게 관계없이도 맛볼 수 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고개를 젓는다. 삶의 즐거움과 따뜻함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사라져 가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모두 지나치게 똑똑해진 탓이다. 여기서 똑똑해졌다는 말은 계산을 잘 하여 세세히 비교한다는 뜻이다. 세상이 이런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버렸으니.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최소의 돈은 행복의 필요조건이다. 의식주의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되지 못한 삶은 행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비타민 섭취가 별다른 효력이 없듯이,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은 기대만큼의 행복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돈 때문에 인생이 풍요로워지기는커녕 돈 때문에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매몰스럽게 변할 수도 있다. 조금 뜻을 꺾어 재물을 취하면 더 많이 갖고 싶고, 이내 그 욕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끝 간 데를 모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제까지 내 삶의 주인은 나였는데 갑자기 돈이 내 주인이 되어버린다. 결국 물욕으로 오염된 사람들이 행복을 물질로 채우려고 해서는 행복은커녕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보험’을 들어야 한다. 안 놓치려고 꽉 잡으면 잡을수록 미끌미끌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재물이니 내 손아귀에서 이것이 빠져나가도 한 번 뿐인 소중한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보험 말이다. 세계 여러 기관들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가난한 은둔의 왕국 부탄이 자주 1위에 오르는 것도 그 나라 사람들이 이 보험을 확실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을 ‘돈 없이 행복할 수 없다.’에서 ‘돈만으론 행복할 수 없다’로, 더 나아가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로 바꾸어보는 것이다. 돈이 많이 없어도, 즉 조금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이를 실천해보는 것이다.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담박(淡泊)을 즐길 줄 알면 적빈(赤貧)도 기쁘다.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물질적 풍요를 지나치게 추구한 결과, 다른 사람과 이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여기에 죄악과 재앙이 싹튼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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