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부부(夫婦)간 거리두기
[정용우칼럼] 부부(夫婦)간 거리두기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1.12.2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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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나는 이 적막한 시골에서 혼자 산다. 자연스럽게 아내와 ‘거리두기’를 하는 셈이다. 대전에서 딸과 함께 사는 아내는 손주가 두 명이어서 그들 케어로 좀 바쁘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아내와 내일이면 만나게 될 것이다. 2주 만에 아내가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이 문구처럼 어쩜 그리움의 간격은 행복의 간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내일 이곳을 방문할 아내를 생각하며 벌써 마음이 들떠있다.

역시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 외로움에 지친 어린왕자와 여우가 서로 친구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둘 다 외로움에 지친 서로를 다독여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서로에게 무리하여 애써 다가가지 않는다. 네가 필요하다고, 곁에 있어달라고 자기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서로를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비유가 떠오른다. 고슴도치들(고슴도치는 이해를 돕는 의역이고 원어는 ‘호저(豪猪)’, 표범도 난감해하는 ‘가시돼지’다)이 추워서 서로 꼭 붙었다. 그러니 찔려서 아파 다시 떨어진다. 그래보니 또 추워서 다시 다가간다. 또 아파서 떨어진다. 그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그들이 마침내 찾아내는 적정 거리.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던 순간, 삶이 꽃이 되는 순간, 결혼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도 마냥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뇌는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만드는 애정화학물질을 생성하는데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2년 사이에 점점 소멸한다고 말한다. 소멸하는 그 시점부터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보이게 되기 마련이다. 단점을 수용하지 못하는 행동은 서로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그 갈등이 쌓여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을 때가 있다. 이쯤 되면 이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난다. 갈등 자체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갈등은 해소될 수 있지만, 아내라는 이름의 수척한 강산에는 아름다운 등꽃 같은 자식들이 매달려 있으니…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이도 저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처음부터 갈등이 생길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그래도 방책이라면 방책이다. 그 방책 중의 하나가 거리두기.

시인 이재무는 이를 참 아름답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그리움 만조로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이재무, ‘제부도’ 중에서 발췌)

가까운 듯하면서 멀고, 먼가 하면 생각보다 가까운 두 섬 사이의 거리처럼 이 적절한 거리두기. 이로써 가끔은 팽팽하게, 가끔은 느슨하게 우리네 삶을 갈무리해 나가면서 탄력을 유지해 나가다 보면 자연 부부간의 사랑의 유지와 존속이 가능하리라는 이야기.

이 순기능 때문에 우리는 지금 ‘거리두기’ 실천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거리두기는 같은 땅 위에서 이루어진 ‘평면적 거리두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방식의 거리두기도 많은 심리학자와 인류학자 등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사회적 안전감을 높이고 개체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입체적 거리두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 보고 싶다. 땅 위의 삶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땅 위의 삶을 하늘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땅 위에서 본다면 그게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본다면, 더 넓은 땅을 보고, 그 너머의 다른 땅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곳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보일 것이다. 내가 옳다고 여겨 온 신념, 나를 가둬 온 고정관념을 그런 거리두기로 바로 깨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서로 간의 갈등은 보다 쉽게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 같은 노부부(老夫婦)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황혼이혼’이 급격하게 늘고 있어서이다. 지난 2000년 ‘황혼이혼’은 전체 이혼 건수의 2.8%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20%를 돌파하며 해마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단다(통계청, 서울시). 노부부간 적절한 거리두기, 그 필요성이 새삼 대두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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