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나이테
[정용우칼럼] 나이테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 승인 2022.01.0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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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소한이 지나고 대한을 앞두고 있는 시절인지라 그런지 참 춥다. 이곳 시골은 겨울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진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여러 이유로 체감온도로 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집 안팎을 둘러본다. 어제 저녁 추위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안 했는지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다.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 이상이 없으면 마당 한가운데 서서 동쪽 언덕에 서 있는 소나무 군락을 바라본다.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가 ‘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했듯이,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겨울나무 그 중애서도 소나무는 더욱 그렇다. 이처럼 추운 겨울이 되면 집 주변의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생명을 보존해 가고 있지만 소나무는 그렇지 않다.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그 소나무 중에 특별히 눈에 뜨이는 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는 그 소나무를 ‘할아버지 소나무’로 이름 지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나에게 여러 번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소나무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심어졌단다.” 그래서 그 소나무의 나이는 할아버지 나이와 같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을 하직하셨지만 이 소나무는 지금도 살아 있어 올해 겨울을 넘기고 있다. 그러고 나면 새로이 나이테를 하나 더 더해갈 것이다.

그것 더해가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 그래서 나무들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이를 몸에 새겨나간다. 한 해를 자라면서 겨울에는 아무래도 생장이 더디고 조직이 치밀해지며 색깔이 진해지지만 생장하기에 좋은 여름에는 빨리 자라고 조직도 성기도 색깔도 연해지게 된다. 진한 부분과 연한 부분이 지나면 1년이 지나게 된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그 수를 헤아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게 되며 우리는 이것을 나이테라고 부른다.

나도 지금 내 ‘할아버지 소나무’처럼 살아 있으니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이테 하나를 더한다. 우리는 저항하고 싶지만 날마다 아침이 그리고 해마다 새해가 배달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배달되는 그 아침, 그 새해 때문에 우리 몸은 힘이 빠지고 쭈글쭈글 낡아지며 쇠약해진다. 그러다가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죽음마저 더 이상 추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로 다가와 눈앞에 생생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한, 지난 세월 동안 터득한 삶의 지혜들을 어설프게나마 적용해 가며 하루하루의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이어가되 가능하면 남은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체념한 상태에서 절망하는 것보다, 불안한 상태에서 허덕이는 것보다 그래도 그 방법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노년의 흰 머리카락은 히말라야 봉우리의 만년설과 같다.“고 했다. 그 봉우리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거의 하늘에 닿을 것처럼 솟아 있다. 구름조차 몸을 엎드려 존경을 표할 만큼.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고안해낸 문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상업적 카피로 태어난 이 문장이 진리의 아포리즘으로 느껴지는 건 여전히 우리 삶이 나이라는 숫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터. 시인은 이를 명백한 오문이자 비문으로 치부해 버린다. 오히려 나이테를 하나 더해가면서 이 고고한 빛깔의 머리카락을 지닌 채 늙어가는 노. 그윽하고 우아한 깊이, 나이 들수록 더 멋진 그대. 이것이 더 멋진 삶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이리라.

내 애독서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늙으면 아이로 돌아간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늙어야 신에 가까운 참된 어린애가 된답니다’. 노인 속에 어린이의 미소를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얼굴. 달라이 라마 같은 사람이다. 하여 나는 연륜에 새겨진 신비를 새삼 절감한다. 나이 들수록 멋진 얼굴, 삶의 연륜이 주름살과 피부 세포 하나마다 새겨진 그런 모습이야말로 인간 명품이 아니던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 그 같은 모습을 지닌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이 질문하는 나, 성찰하는 나가 되어야겠다.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삶이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따뜻하고 자비로운 사람인가 등등. 이러한 질문, 이러한 성찰이 내 자신을 위한 죽비가 되어 자아도취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게 하는 최고의 멘토가 될 수 있으니. 나이 들수록 멋진 인간, 이것은 어느 특정 부류 사람들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진지한 장래 희망이며 누구나 추구하고 누려야 할 축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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