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60대 후반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재기 소동을 몇 차례 겪었다. 언론사에 근무했던 만큼 시류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굳이 사재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세히 설명했지만, 집사람의 막연한 불안감은 충동구매 내지는 합리적 준비구매(?)의 명분 등을 앞세우고 생수며 라면이며 화장지, 우유며 마스크에다 방독면까지도 사들였다. 장마, 홍수, 가뭄 대비, 북한 미사일 발사, 연평도 포격사건, 메르스와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이웅평 소령의 미그기 귀순 때는 공습 대비 비상식량까지 구입했던 적도 있다. 결과는 그렇게 급하게 비싸게 주고 사재기를 했던 물건들은 한 번도 제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이들 물건은 처치 곤란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여파로 소금값이 급등하고 이에 따른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에 또 누군가의 장난에 쓸데없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소금 사재기 소동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재기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천일염은 기본적으로 소금을 제조하는 과정, 즉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과정에서 유해한 방사능물질은 모두 증발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바닷물에 흘러들어간 각종 공해물질 등이 기화하거나 증발되지 않고 소금에 달라붙어 천일염의 위험성을 더 높이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나라 남동해안에서 제조되고 있는 소금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내 천일염은 지금 특정 정치세력이 우려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세플라스틱이 더 큰 문제다. 바닷물에 섞여 있는 미세플라스틱은 바닷물이 소금으로 정제되는 과정에서 각종 미네랄도 농축되지만 미세플라스틱도 같이 천일염의 결정에 농축되기 때문이다.
이번 천일염 사재기 소동은 유독 특정지역의 천일염 산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산과 공급물량 부족, 올 여름 장마 등 장기 전망 등이 이번 사재기 소동의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만일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이유 때문에 벌어진 소동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법칙상, 내년 총선을 넘기면 논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사재기 소동은 천재지변이나 전시와 같은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적어도 국가의 행정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사회 전체를 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지닐 수는 없다. 그리고 그 기간도 오래 갈 수가 없다. 곧바로 대체재나 대체수단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번 소금 사재기 소동은 한때 나라를 들었다 놓았던 광우병 사태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닮은 점은 국내가 아닌 해외 국가 즉 다른 나라에서 촉발된 위험요소가 국내로 유입된다는 가정에 근거해 제기된 정치적 이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슈가 되는 출발점이 지극히 비논리적 선전선동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해 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 또한 광우병과 비슷하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비이성적 감성적으로 견강부회하는 선전문구와 주장도 광우병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다른 점은 광우병 소동 때처럼 사회적 파괴력이 그렇게 크지가 않다는 점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이른바 가짜뉴스에 국민들이 그렇게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게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이태원 참사가 제2의 세월호가 되지 못한 사회적 여론의 작동원리가 같다고나 할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하필이면 왜 소금인가? 매일 같이 식탁에 오르는 각종 해산물을 정치적 제물로 삼는 것이 훨씬 파급효과가 더 분명할 텐데…. 아직 방류도 하지 않았는데 사재기에다 썰렁하다는 수산시장 소식에 애꿎은 소금만 애간장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