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향토사의 올바른 정립은 고전문헌 고찰이 필수
[강신웅교수의향토인문학이야기]향토사의 올바른 정립은 고전문헌 고찰이 필수
  • 경남미디어
  • 승인 2018.11.23 1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초 진주출신 대명유(大名儒) 하연·정이오
촉석루 주변 아름다운 경관과 사연을 읊어

高城絶壑大江頭 (고성절학대강두)

높은 성 깎은 벼랑 큰 강머리에

冬柏梅花矗石樓 (동백매화촉석루)

동백 매화 우거진 곳에 촉석루가 서있구나.

若也登臨留勝蹟 (약야등임유승적)

만약 이 곳에 올라 좋은 흔적 남기려면

請題佳句記吾州 (청제가구기오주)

청컨대 좋은 글 지어 우리 고을에 적어놓게나.

 

 

 

興廢相尋直待今 (흥패상심직대금)

흥폐를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러

​層巓高閣半空臨 (층전고각반공림)

층층바위 절벽위에 높은 루가 하늘에 닿았네.

​山從野外連還斷 (산종야외연환단)

들 넘어 산줄기 끊어질 둣 이어 돌고

​ 江到樓前闊復深 (강도루전활복심)

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어지고 깊어지네.

白雪陽春仙妓唱 (백설양춘선기창)

백설 양춘은 기생들이 즐겨 부르고

​ 光風霽月使君心 (광풀제월사군심)

광풍제월은 군자의 심사로다,

當時古事無人識 (당시고사무인식)

그 때의 옛일을 뉘라서 알리오만

​倦客歸來空獨吟 (권객귀래공독음)

고달픈 객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전국에 유명 누각들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3대 유명누각으로 지칭되고 있는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 그리고 진주의 촉석루가 있지만 그들 중 누각 안에 전대 문인들의 시문 현판이 가장 많이 부착되어 있는 누각은 바로 진주의 촉석루이다.

이번 호부터는 고려·조선 양조에 걸쳐서 전국적인 명인(名人)들이 그간의 우리 진주·진양의 경관과 사연을 읊고 노래해 남긴 유명 시문(詩文)들을 작가들의 평전(評傳)과 그들 작품해설 중심으로 기술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현재까지 진주성 촉석루 내에 걸려 있는 시판의 시문과 주련(柱聯) 그리고 제일 먼저, 촉석루 후면 계단 올라 좌측에 거의 초서체로 된 경재(敬齋) 하연(河演)의 촉석루에 관한 7언시부터 읽기로 한다.

高城絶壑大江頭 높은 성 깎은 벼랑 큰 강머리에

冬柏梅花矗石樓 동백 매화 우거진 곳에 촉석루가 서있구나.

若也登臨留勝蹟 만약 이 곳에 올라 좋은 흔적 남기려면

請題佳句記吾州 청컨대 좋은 글 지어 우리 고을에 적어놓게나.

상기 시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연량(淵亮)이고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로 부윤 자종(自宗)의 아들인 하연(河演)의 작품이다.

그는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96년(태조 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하였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판서·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년(세종 5년)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고자 하여 채택 받았으며,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고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이조의 일을 맡아 보았으며,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고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문종 1년)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 되었고 단종 2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문효(文孝)의 시호가 내려졌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 「진양연고 晉陽聯藁」가 있다.

그 다음 역시 촉석루 안에 걸려 있는 또 다른 시문을 보기로 한다. 상기 하연의 시와는 달리 매우 긴 7언시로써 서체는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해서체로 되어있다.

興廢相尋直待今 흥폐를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러

​層巓高閣半空臨 층층바위 절벽위에 높은 루가 하늘에 닿았네.

​山從野外連還斷 들 넘어 산줄기 끊어질 둣 이어 돌고

​江到樓前闊復深 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어지고 깊어지네.

白雪陽春仙妓唱 백설 양춘은 기생들이 즐겨 부르고

​光風霽月使君心 광풍제월은 군자의 심사로다,

當時古事無人識 그 때의 옛일을 뉘라서 알리오만

​倦客歸來空獨吟 고달픈 객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상기 시는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의 세종16년까지 살아서 향년(享年)이 81세까지 이른 당시로써는 매우 장수했던 진주출신 학자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작품이다.

 

 

강 신 웅

본지 주필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