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인] 박영숙 한국화가 _ 설치예술, 특히 ‘미디어아트’를 새로운 시도로 접근해보고 싶어
[경남인] 박영숙 한국화가 _ 설치예술, 특히 ‘미디어아트’를 새로운 시도로 접근해보고 싶어
  • 이기암 기자
  • 승인 2024.05.07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형적 진화 추구하면서도 한국적 회화 양식 연구 게을리하지 않아
현대와 전통 간 구분에 안주하지 않고 실험적이면서 전통에 뿌리 둬

그림에 꽃을 표현하고 이를 입체화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 추구
산청군 단성면에서 어린 시절 보내, 목화 꽃 따 먹으며 놀던 기억에서 영감

목화꽃은 작업의 핵심 요소, 사실적으로 표현된 물고기와 함께 조형작업
박영숙 한국화가
박영숙 한국화가

“산속을 가다 보면 아름다운 폭포가 있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잖아요. 마치 하나의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의 설치 작품(미디어아트)을 해보고 싶습니다.”

진주시 신안동의 한 건물 옥상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적절한 폐쇄와 보호받는 느낌이 드는 그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꽃과 화분들이 옹기종기 줄을 맞춰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옥상에서 밖을 내다보면 진주의 시가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진주교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방송국도 보인다. 낮보다 밤에 보면 광경이 더욱 아름다울 것 같은 이곳. 요즘같이 번잡한 시대에 어떤 외부적인 것들에게 침해(?)받지 않고 고요히 작업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 곳곳에는 그가 올 하반기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들이 감미로운 음악과 한데 어우러져 놓여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멋진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긴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찾아오는 다양한 희노애락들을 그림이나 음악같은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것, 그리고 이를 세상 구석구석마다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인간적 행위보다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조직행동학 박사과정을 역임하고 골드스미스 런던대학에서 예술경영과 사회학을 가르쳤던 빅토리아 D. 알렉산더 교수는 예술을 ‘추상적인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술은 사회학적으로 정의되므로 같은 것을 보아도 예술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영숙 작가에게 예술이란 어떻게 표현될까. 박 작가의 작품 내에는 꿈과 열망을 갈구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존재에 관한 작가적 감성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성은 이성적이고 사실적인 조형과 상상력이라는 두 개의 틀 안에서 발현된다. 실제 박영숙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간다.

현대와 전통 간 구분에도 안주하지 않는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전통적이면서 실험적이고, 실험적이지만 전통에 뿌리를 둔다는 게 옳다. 박영숙 작업의 핵심은 조형적 진화를 추구하면서도 한국적 회화 양식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예술의 자유의지를 실천하려 하면서도 우리 전통 채색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 또한 그의 작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미술평론가 홍경한

특히 요즘 현대미술계에서는 ‘설치예술’이 주목받고 있다. ‘설치예술’은 그 독특한 형식과 개념, 그리고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그림이나 조각과는 달리, 관객이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거나 주변을 둘러보며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경험도 제공한다. 또 예술가들에게 창의적인 자유도 주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나고 자란 박영숙 작가(동양화)도 이러한 ‘설치예술’의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설치예술 중에서도 특히 “미디어아트”와 접목한 전시회를 멋들어지게 해보는 것이 박 작가의 꿈이다.

박 작가는 2019년도에 Joseon Travel(조선유람) 전시회를 열었다. Joseon Travel은 ‘과거로부터의 시간을 끌어와 미래로의 시간으로 연결시키는 현재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느끼기 위해 유람하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

이 전시회에서 박 작가는 빔을 통한 ‘박연폭포’를 재현하려고 했다. 많은 구상을 통해 이 기획을 거의 1년을 준비했고, 조카와 후배들에게 “꼭 전시회에 오라”며 곧 다가올 전시에 마냥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전시회를 앞두고 불과 두 달 전, 중앙박물관의 한국화 전시를 가보니 박 작가가 기획했던 전시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던 것. 박 작가는 “아, 이렇게 사람의 생각이 비슷할 수 있구나”라며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랬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바다를 그리고 ‘파도를 치는 장면’으로 변경했다고.

박 작가는 약 4년이 지난 올해 전시전에는 당시 실행하지 못했던 ‘박연폭포’를 재현해보려 한다. “요즘 많이 유행하는 미디어아트를 접목해보고 싶어요. 폭포를 만들고, 옆에다가 가을분위기가 나게끔 폭포 양쪽으로 무엇인가로 설치해 놓을 거예요. 그럼 오아시스에 와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길 수 있겠죠. 포토존도 만들어 사람들이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이성환 화가(미술 비평가)는 박영숙 작가가 작품의 모티브를 자연의 꽃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박 작가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산청군 단성면인데, 이곳은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씨를 처음 재배해 성공한 곳으로 그가 한결같이 꽃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는 것. 소녀 박영숙은 이 아름다운 고향 산하에서 함몰되듯 동화되고, 어릴 때의 꿈이 목화처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삶, 박 작가의 화폭은 늘 영혼의 우물처럼 새 맑은 향기를 내뿜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박영숙 작가와의 대담내용이다.

▲먼저 작가님 소개 좀 부탁드린다.

-한국미술협회 한국화이사, 경남한국화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또 진주미술협회회원, 여성작가의아름다운여행전회원, 경남전업작가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화가의 길을 선택하시게 된 배경이 있다면?

-그냥 그림이 좋았다. 고등학교때 선생님이 한국화를 전공하셨는데 아마도 그분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환경을 잘 조성해주셨다. “영숙이는 대학을 꼭 보내야 한다”며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주변에 설득도 많이 하셨다. 당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을 했는데, 나 역시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선생님은 내 소질을 많이 안타까워 하셨고, 결국 난 그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 미대를 가게 됐다.

꿈을 향하여
꿈을 향하여

▲미대 가기 전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있나?

-그림을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 학원조차 다닌 적이 없었으니까. 손재주가 있어 대회가 있으면 선생님이 대회를 데리고 다니곤 했다. 당시 아버지께서 지금으로는 A4용지 만한 스케치북을 사주곤 했는데,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렸던 거 같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모아 두셨다.

▲대학을 가고 나서는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았나?

-사범대이다보니 미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는 모두가 새롭게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그림 그린다고 밤낮으로 실기실 지킴이로 살았다.

▲당시 미술계에서 학풍은 어땠나?

-1980년대만 해도 한국화가 쇠퇴되는 분위기였다. 서양화가 주류였고, 학교에서도 서양화를 가르치지, 한국화는 좀 등한시됐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시대부터 동양화가 쇠퇴되기 시작했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한국화가 엄청나게 부흥했다. 실경산수화와 같이 민간인들도 집에 그림을 걸어놓을 정도로 예술적인 것들이 풍요로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풍류를 즐기는 문화 아니었나. 그런데 일제 강점기가 들어서고 이러한 문화가 점차 사라진 것이다. 교육의 실상이다.

▲채색화(동양화)를 하게 된 이유가 있나?

-정서적으로 한국화가 좋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채색화는 동양화에서 수묵화나 수묵담채화와 같이 한 분야로, 채색 위주의 그림을 말한다. 천연 안료 아교와 가루물감 분채를 개어서 물로 조절하여 한지를 겹겹으로 만든 장지에 수십번 쌓아올리는 방법으로 그린다. 전통 채색화는 화원 등의 직업화가들이 그린 궁중 장식화나 궁중 기록화, 초상화, 불화(佛畵), 민화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생광 선생님을 통해 채색화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좋은날
좋은날

▲채색화를 하면서 반응은 어땠나?

-매화, 잉어 등의 소재와 접목하여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했다. 목화꽃은 작업의 핵심 요소이자,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물고기와 함께 작업의 조형을 이끄는 주요 축이다. 입체로 혹은 특정한 색으로 위치하는 목화꽃은 그 자체로 따뜻함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꽃말이어서인지 하얀색 부조로 처리된 목화꽃은 특히 솜의 그것마냥 포근한 느낌을 심어준다고 하더라.

▲그림을 보니 대부분 꽃이 입체로 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한국화를 어떻게 하면 더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입체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한지의 특성을 살려 부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화의 특성상 평면적이라 다양성,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서 1년여를 연구하여 개발하고 정립시켰다.

▲한국화에 입체를 시도하는 것은 화단에서 처음 있는 일인가.

-화선지를 위에서 붙히는 방법은 있었다. 그림을 붙이는 것은 많이 하지만, 그림을 밀어내는 방법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도 전시회를 많이 다녀봤는데 이 방식을 취하는 작가는 없더라. 그런데 저는 좀 더 독특한 나만의 기법으로 입체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에 꽃을 표현하고 이를 입체화하는 것으로 제 고유의 방식이 진화했다.

▲목화꽃을 특별히 형상화하는 이유는?

-어릴 때 학교를 오가면서 목화 꽃이 필 때면 목화의 애기솜을 따 먹기도 하고 꽃으로 놀이를 한 추억이 컸다.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목화 꽃을 언제나 그림 속에 녹아들게 했다.그리고 목화로 인하여 1차산업화의 시작으로 부흥을 일으켜 지구의 우리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혜택받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그런 목화 꽃이 예술을 상징하게 됐다.

봄-바람부는 날
봄-바람부는 날

▲물고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물고기는 충효, 다산, 다복, 벽사, 학문, 입신, 부부의 금슬 등 여러 상서로운 뜻을 지닌다. 재물과 장수(長壽)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런 물고기들이 홀로 내지는 무리지어 목화꽃 사이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이는 단순한 자리 옮김이 아니라 희망의 산포(散布)와 갈음된다. 이때 산포는 일차적으론 마음을 따라 유영하는 심리적 상태의 은유일 수 있겠으나, 이차적으론 우리네 삶에 요구되는 행복의 대체어로 기능한다.

▲작가님의 화풍은 주로 어떤가?

-작품 내에 꿈과 열망을 갈구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존재에 관해 감성을 녹아들게 한다. 현대와 전통 간 구분에도 안주하지 않고, 한쪽에 치우침 없이 전통적이면서 실험적이고, 실험적이지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형적 진화를 추구하면서도 한국적 회화 양식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왔다고 평가받는다. 예술의 자유의지를 실천하려 하면서도 우리 전통 채색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전시회를 기획할 때 지원은 잘 되는 편인가?

-진주에서는 개인에게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는다. 2022년도에 진주문화재단에서 개인에게도 기회를 주어서 운좋게 그림쪽에서 많이 지원받아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체험과 관객과의 소통하는 프로그램으로 성황리에 전시를 끝냈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이번에는 도의 지원을 받아 ‘설치작품’과 접목하는 작품전을 해보고 싶다. 폭포가 흐르고, 꽃이 나르고 하는 식으로. 타 도시에는 지역작가들 작품으로 ‘미디어아트’를 만들어 멋지게 해놓더라.

우주로 간 고래
우주로 간 고래

▲작가로 활동하시면서 어떤 점이 아쉬운가?

-전문 작가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미래가 있다고 본다. 예술의 맥을 이어가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선진국도 과거 예술가들의 업적으로 지금도 우대받고 있다. 옛날 프랑스에서는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지원해줬다. 이태리에도 유능한 예술작가들에 대한 지원이 많았기 때문에 멋진 작품들이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중세미술은 종교미술이다. 우리나라도 종교미술이 있고, 그것이 바로 불교미술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불교미술을 비롯한 종교미술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미술이 성행한 이유는 옛날에는 상업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천국을 못간다고 했다. 때문에 종교에 헌신하고, 기부를 하고, 봉양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했고, 그래서 돈 많은 부유한 장사치들이 교회에다 유명한 작가들한테 천장이나 벽 등 곳곳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멋진 작품들이 많이 나온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중심으로 미술이 이루어져도 로마나 유럽 등 교회에서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고, 그러다 보니 작가들도 부흥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작업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나?

-예전에 런던, 프랑스, 미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전시했었고 내년에는 LA쪽에서 전시회를 해보고 싶다. 태국 방콕에서도 개인전을 해보고 싶다. 유학을 가지 않은 것이 평생 맘에 두고 아쉬워서 다른 나라에서 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갖고 있다. 그래서 제가 외국으로 여행가는 것을 좋아하고, 코로나 오기 전에는 거의 1년에 3번꼴로 밖으로 나갔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은 늘 꿈꾸고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근작에서 각각의 사물은 상징과 색은 위치에 따라 감정의 개입과 느낌이 유동적이고, 하나같이 길상에 입각한 작품이지만 한국 채색화의 현대화를 통한 꿈의 확장과도 맞닿아있다. 일부 작품에서처럼 단순화하거나 과장된, 대범한 경향을 지니면서도 동시대적 방법론을 추구하여 전통을 계승하고 나만의 작품으로서 작가의 길을 가고 싶다. 이기암 기자

부귀영화
부귀영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988, 4층 (칠암동)
  • 대표전화 : 055-743-8000
  • 팩스 : 055-748-14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선효
  • 법인명 : 주식회사 경남미디어
  • 제호 : 경남미디어
  • 등록번호 : 경남 아 02393
  • 등록일 : 2018-09-19
  • 발행일 : 2018-11-11
  • 발행인 : 황인태
  • 편집인 : 황인태
  • 경남미디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7481400@daum.net
ND소프트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이선효 055-743-8000 74380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