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의세상엿보기] 역사를 가다 - 역사 앞에 서서 -
[김용희의세상엿보기] 역사를 가다 - 역사 앞에 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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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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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시인·수필가
김용희 시인·수필가

초가을, 새벽에 출발해서 철원 백마고지, 인제 만해마을, 영월 단종유배지를 하루해 걸음으로 다녀왔다.

백마고지! 그곳은 고작 열흘 남짓에 이 작은 고지 하나 차지하려고 십여번의 서로 뺏고뺏기는 혈투 끝에 1만7000여명의 전사자를 만들어 낸 6.25 최대 비극의 장소이다. 병참기지 혹은 철원평야 곡창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 피가 꺾였다. 여기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눈물과 슬픔 뿐이다. 그 피지 못한 꽃들은 누구를 위해 죽어갔는가. 조국? 이념? 자유?

그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지랭이 백성들이야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소박하게 살아갈 뿐, 인간에게 욕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대부분 양심의 굴레 안에서다. 이념이란 잣대로, 국가와 민족이란 구분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은 머리좋고 계락좋은 포스있는 지배족들의 짓이었다. 오스만제국, 프랑크프르트 공화국,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지금은 사라진 제국, 그 제국은 누구를 위해서 어떤 이념과 가치로 존재했으며 그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피는 오늘날 무슨 의미를 갖는가?

백담사 오르는 길목 인제 만해마을, 만해는 기약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조국의 독립을 끝없이 기다린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이 어여쁜 비구니였다는 추측 논조도 있지만 그것은 분명 언제 올지 모르는 조국의 독립이었다. 왜 바다 건너 그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족속들은 우리 조국을 짓밟고 한민족의 순박한 인권을, 평화를 사랑하는 이 민족을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시키려 했나?

그렇게 기다리던 독립이 예기치 않게 그가 이미 입적해버린 후 불현듯 찾아왔지만 그 조국은 다시 남북으로 나뉘어지고 이 작은 고지에서 무자비한 죽음이 있을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조국을 둘로 나눈 이는 누구이며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가? 분단의 결과가 이런 무자비한 살육과 지금도 지속되는 끝없는 민족간 고통을 가져오리란 우려를 당시 분단주의자들은 전혀 하지 않았을까? 타의에 의한 타국에 의한 해방이라고 하더라도 해방이후 우리 자력으로 분단을 극복할 수는 없었을까? 김구 선생은 반탁 통일을 주장하다 결국 흉탄에 가셨지만 과연 당시 남북분단은 불가피했던 것일까, 혹 당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또한 전략있는 또 인간지배의 야욕을 깊숙히 감춘 이들이 그들의 권력구축의 기회로 활용한 것은 아니던가.

사실 백성, 민족, 국가… 이런 것들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애매모호하다. 누가 경계를 나누었고 왜 나누었는가. 단일민족? 그것보다는 우생학적으로 복수·혼합민족이 우성번식을 한다. 굳이 구분짓고 나누어야 할 이유가 없다. 씨족이 확대되고 민족이 생겨나면서 외부 부족과의 화합이나 연합이 본질적 성향이 아니라 공격과 침략이 당연한 것일까? 물론 역사는 가치나 당위가 아니라 사실적 기록이다. 그리고 ‘바람직함’ 혹은 ‘가치’라는 것은 뭐든 절대적이지도 않다. 반인권적, 반생태적이 아니라면 인류공영, 동북아 공동번영 그것이 바람직함의 가치이다. 친교 화합 연합, 그것들이 본래 인간에게는 아니 생태계의 법칙으로는 맞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헤겔의 말처럼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고 전쟁이야말로 자기확신의 기재인가? 그래서 강함만이 살아남는 것만이 선이요 진리요 자유인가, 인간은 그래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수많은 전쟁사의 그 무고한 희생들에 대한 허무는 어찌해야 하는가? 인류가 만들어온 끝없는 거짓과 우상 명분과 가치. 없던 것을 만들어 섬기고 존중하고, 인간의 사고는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쯤 영월 단종유배지를 찾았다. 깊은 강물이 돌아나가고 뒷쪽은 험준한 산, 천혜의 유배지다. 계유정난 수백의 생명이 희생된 사건, 사군이충 사친이효. 조선의 가치는 ‘불사이군’이었다. 한 사람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 그 본질적 이유가 무엇인가? 신의라는 것은 본래 사람에 기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도자 그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하는가? 자신의 영달인가 모두의 번영인가. 과연 가치 신념 주의 이념 나아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린 조카까지 목숨을 빼앗고 절대군주가 되었던 세조,

그렇게 빼앗은 왕좌를 물려받은 아들 예종은 곧 독살당했다고 추정되고 있으니 권력이란 무엇일까, 혹 오늘도 이런 권력의 의미도 마음에 새기지 않는 불나방 같은 세조로 사는 이들은 없는가? 가치의 허구를 들어내고 권력의 허무를 파악하며 물러나 있으면 그게 나약함의 자기변명인가.

인간사회 본성이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하는 것이었다면, 소멸시키지 않으면 소멸당하는 구조라면 이 운명적 비극은 어쩔 것인가? 그래도 인간이 인간인 것은 선과 자유와 평등과 인권 등 공동의 가치구조를 만들고 추구하기 때문아닌가? 아니면 분쟁 다툼 폭력 지배 나아가 플라스틱으로, 화석연료로 지구를 데우고 파괴시켜 스스로 빙하기를 초래시키는 멸종인자들인가? 역사 앞에서 다시금 스스로 돌아보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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