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그대, 꽃 앞에 서 있는 나는 점점 작아지는가?
[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그대, 꽃 앞에 서 있는 나는 점점 작아지는가?
  • 정숙자 문학박사
  • 승인 2021.03.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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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꽉 묶은 운동화 대신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걸어보련다
매화꽃의 속내도 살피고
버들강아지의 쑥스러운 표정도 관찰하면서
봄과 당당하게 마주 서 볼까나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 무리의 매화꽃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함께 피어나고 있다. 진양호에 발을 담그고 겨울을 버티고 견뎌내고 만 갯버들도 싹을 피우고 있다. 아직 솜털을 걸치고 있어 어린아이모양 살포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지만 곧 벚꽃들이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고 불쑥 나올 때 함께 나오려고 시간을 아껴두고 있는 듯싶다. 양지바른 곳의 매화는 이미 그 쓰임을 다하고 꽃을 가지에서 하나씩 지우고 있다. 이제 마지막 가지 꼭대기의 꽃만 피면 매화꽃은 이미 봄을 알리는 소임을 마친다.

들길을 산길을 산책하면서 나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집으로 데려온 개나리는 우리 집 거실을 노란색으로 가득 물들여 놓았다. 향기는 자연에서보다 덜 하지만, 제 구역을 벗어나도 개나리꽃은 샛노란 꽃으로 답을 하고 있다.

지인들의 방문에 노란 개나리꽃은 카메라의 배경화면이 된다. 지인들의 활짝 웃는 모습도 개나리꽃을 닮아있다. 사람들이 돌아간 곳에서 집 청소를 하고 꽃병에 물을 갈아주면서 나도 개나리 옆에 얼굴을 가져다가 사진을 찍어 본다. 개나리꽃 옆의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웃는 둥 마는 둥 알 수 없는 표정과 화사한 꽃마저도 나를 자신의 뒤편으로 숨겨놓고 있다.

나는 아직도 긴 겨울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 집에 강제로 온 개나리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봄이 오듯이 웃고 있을 뿐 이건 진정한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웃음마저도 나의 영역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을. 이 가식의 웃음에 많은 사람들은 속을 것이다. 그들은 또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관찰할 것이다. 나는 그 관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연극을 할 것이며, 그렇게 이미 나에게 봄은 오고 있다.

꽃 앞에 서 있는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을 것이고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나의 눈가에는 주름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나는 그 진실을 외면하기 위해 오늘도 걷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끈을 조이고 있다. 운동화 끈이 풀어져 혹 나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묶어서 출발하면 될 것을 나는 이미 꽁꽁 묶어서 발을 아프게 하고 있다. 끈이 풀리지도 않을 수 있다. 느슨하게 묶어 나의 발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걸음을 걷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는 버릇 때문에 나의 몸을 나의 마음을 아주 힘들게 하고 있다.

오늘은 아주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아주 천천히 걸어 볼까 싶다. 주위에 핀 매화꽃의 속내도 살피고, 버들강아지의 쑥스러운 표정도 관찰하면서 봄과 당당하게 마주 서 볼까나! 그러면 내 불안한 마음은 호주머니 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둬야 할 것이다. 불쑥 기어 나와서 평소와 다른 나를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겨울의 기운이 남아 혹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내 속에 있는 봄을 내 안에 있는 개나리꽃은 언제 올지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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