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원사 계곡길이 새로 개통됐다. 고향에 볼 일이 있어 내려간 길에 소식을 듣고 개통식을 가진 다음날, 고향 친구 두셋과 함께 때마침 내린 가을비를 촉촉하게 맞으면서 새로 난 계곡길을 걸었다. 평촌 주차장에서 대원사를 거쳐서 이미 폐교한 옛 가랑잎 분교가 있는 유평리까지 일부 개통한 3.5키로 구간 계곡길은 평일인 관계로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다른 방문객은 거의 없어 길은 호젓했고 지천으로 떨어진 비에 젖은 단풍잎처럼 늦가을의 운치는 더욱 감칠맛을 더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과 너럭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물의 흰 포말이 빚어내는 비경에 감탄과 찬사를 연발했고 차가운 늦가을의 명징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면서 만추의 지리산과 깊은 호홉을 나누었다.
대원사 계곡은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 그리고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골들을 타고 내려온 물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길이 13키로 미터가 넘는 지리산 골짝에서는 폭과 규모로는 가장 큰 계곡이다. 선녀탕과 옥녀탕, 용소 등 크고 작은 소와 세신대, 세심대 등 거대한 너럭바위 언덕 등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국내 제일의 탁족터로 평가 받을 정도로 최고의 힐링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리산의 다른 계곡과는 달리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일반인들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다. 차로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매우 가팔라 접근로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숲도 무성해서 접근이 쉽지 않았다. 마치 그림의 떡을 쳐다보듯 찻길에서 계곡을 내려다보거나 차창으로 바라보며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가득한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대원사 계곡길의 개통은 더욱 반갑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리산이 안고 있는 소중한 비밀의 화원이 그 속살을 드러내면서 마지막 봉인이 풀렸다고 할 수도 있다. 대원사 계곡길은 앞으로 새재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아침이 열린다는 뜻의 조개골에서 새재까지 추가로 계곡길이 이어진다면 이 길은 국내 유수의 힐링 명소이자 명품 자연 탐방로로서 분명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길만 연다고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추가로 보완하고 손보아야 할 것들이 여기 저기 있어 보인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탐방로 평탄작업이 더욱 필요해 보이고, 일부 구간은 테크목의 간격이 너무 넓어 아이들이나 노년층은 발이 걸려 넘어질 우려도 있어 보인다. 구간 연장 공사를 하면서 보완작업이 있었으면 한다.
대원사 계곡길은 자연의 풍치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신라시대 때 창건되었다는 비구니 도량인 천년 역사의 대원사와 가랑잎 분교로도 유명하다. 또 ‘골로 간다’는 표현의 어원지로, 오봉계곡과 함께 대표적인 지리산 오지로서 항일저항, 빨치산 등 역사적인 애환과 스토리 또한 가득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와 인문, 문화 콘텐츠까지 곁들인 스토리텔링의 명품길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길이다. 여기에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인 밤머리재 터널이 뚫리면 활용도가 떨어지게 되는 밤머리재 국도의 단풍나무 길을 대관령 옛길처럼 비포장길로 탈바꿈시켜 나무꾼 옛길이나 산나물 채취길로 변모시켜 웅석봉 등산과 연계하는 또 다른 탐방체험 길로 개발한다면 대원사 계곡길의 무게는 더욱 빛을 더할 것으로 생각된다. 산청군은 말 그대로 금상에 첨화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