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4화. 계유정난과 김종서의 죽음
[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4화. 계유정난과 김종서의 죽음
  • 경남미디어
  • 승인 2020.03.0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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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에 눈이 먼 수양대군 반대세력을 모조리 제거하다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 김종서 등 의정부 대신들에게 의존
수양의 입장에선 단종을 대신해 의정부가 수렴청정한다고 판단
단종 1년 1453년 10월 10일 밤 수양대군 일파가 계유정난 일으켜

‘계유정난’은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뺏은 쿠데타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어려움을 다스린 사건’이란 의미로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썼다
김종서 장군(이순재 분)이 수영대군(김영철 분)의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즉사함과 동시에 계유정난이 시작됐다. 출처_KBS 2TV ‘공주의 남자’
김종서 장군(이순재 분)이 수영대군(김영철 분)의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즉사함과 동시에 계유정난이 시작됐다. 출처_KBS 2TV ‘공주의 남자’

1. 계유정난

문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2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에게 기댈 언덕이라곤 세종 때부터 조선을 이끌어 온 김종서 등의 대신들뿐이었다.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 셋째아들 안평대군 등 이미 장년을 넘어선 숙부들이 여럿 있었지만, 단종으로선 그들이 자신을 지켜줄 배후 세력이라기보다는 권력을 넘볼 수 있는 위험 세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정 운영을 의정부에 맡겼다. 모든 정사의 결정권은 의정부에 있었으니 단종을 대신해 의정부가 수렴청정을 하는 꼴이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수양대군은 권람, 한명회 등과 홍달손, 양정 등 많은 무인을 규합하여 이미 큰 세력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애써 일군 조선왕조를 김종서 등의 몇몇 신하들에게 뺏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수양대군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의정부에선 수양대군과 맞설 대안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이었다. 안평대군은 수양대군의 정치적 개입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권력에 대한 야욕은 없는 인물이었다. 정치적 성향보다는 예술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단종 1년인 1453년, 안평대군을 앞세운 의정부와 수양대군의 세력이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은 어지러운 란(亂)을 쓰지만 계유정난은 어려울 난(難)을 썼다. 계유정난은 무력으로 권력을 뺏은 사건이므로 엄연히 쿠데타에 해당한다. 그래서 쿠데타의 의미를 지닌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어려움을 다스린 사건’이란 의미로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썼다.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2. 계유정난 그날의 재구성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이 일어나던 그 날 밤 상황으로 돌아가 재구성해 보자.

어둠이 완전히 깃들 무렵, 수양대군은 철퇴를 가장 잘 쓰는 수하 임운을 데리고 김종서 집으로 갔다.

“오늘은 요망한 도적을 소탕하여 종사를 편안히 하겠다. 임운을 데리고 가서 선 자리에서 김종서를 베고 올 것이니라.”

수양대군은 갑옷을 챙겨 입고 동지들을 향해 또 외쳤다.

“김종서 하나만 잡으면 된다!”

-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p148에서 따옴

임운은 시정잡배였는데 철퇴 휘두르는 솜씨가 뛰어나 수양대군이 거두어들인 하인이었다. 김종서 집에 수양대군 일행이 도착했을 땐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가 대문에서 수하 몇을 데리고 지키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은 김종서는 긴 칼을 손이 가장 잘 닿은 곳에 고쳐 걸고 수양대군을 방에서 기다렸다. 며칠 전에 수양대군 쪽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군사를 풀어 주위 경계를 강화하자는 건의를 김종서는 단호히 거절한 바가 있었다. 온 나라의 군사를 손안에 쥐고 있는데 내금위 군사밖에 영향력이 없는 수양대군쯤이야 어떠랴 싶었던 것이다.

대문 밖.

수양대군은 대문 문턱을 넘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김종서를 대문 밖으로 불러내야 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긴급히 전할 말이 있으니 선 채로 전하고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마침내 김종서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수양대군은 준비한 서찰을 김종서에게 전했다. 70세 노인 김종서가 서찰을 읽기에는 너무 어두운 밤이었다. 그가 달빛을 향해 글씨를 살피려 애쓰는 순간 임운이 철퇴를 휘둘렀다. 그때 장남 김승규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쓰러지는 김종서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뒤따라온 김종서의 수하 양정이 칼을 뽑아 김승규를 베었다. 죽음을 확인한 수양대군은 뒷수습을 하기 위해 단종이 머물고 있던 경혜공주 사가로 재빨리 돌아갔다.

그러나 김종서는 죽지 않았다.

철퇴를 여러 번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임금이 걱정되어 여인의 가마로 변장하여 도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김종서가 아직 살아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한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온 도성을 뒤지고 있었다. 차남 김승벽의 처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김종서를 잡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압송하려던 군사를 향해 수레를 준비하라고 호령하던 김종서. 그 뒤에 서 있던 양정이 칼을 휘둘러 김종서를 베었다. 한때 북방을 호령하던 대호(大虎) 김종서. 여진족들을 몰아내고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여 국경을 넓힌 그가 허무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3. 김종서의 가족

김종서의 장남 김승규는 계유정난 당시 현장에서 즉사했고, 차남 김승벽은 도주하였다가 20일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김승규의 아내와 딸은 정인지에게 하사되어 노비로 살았다. 또한 김승벽의 아내도 홍윤성에게 노비로 하사되었다. 정인지나 홍윤성은 모두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편에 섰던 인물로써 그 공으로 김종서의 일족을 노비로 데려간 것이다. 피붙이 중 16세 이상인 자손은 교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인 자손은 어미 손에서 자라게 하였다가 16세가 되면 섬 지역의 관노로 보내 영원히 격리케 하였다.

4. 드라마 <공주의 남자>

한때 인기 드라마였던 <공주의 남자>. 수양대군의 장녀 세령과 김종서의 셋째아들 김승유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이다. 역사를 전혀 모르는 이에겐 배경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다. 그러나 김승유는 이미 혼인하여 자식을 두고 있는 유부남이었고, 수양대군의 딸(세령)에겐 아버지뻘 나이였으니 둘의 연인 관계 설정은 지나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물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역사 왜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 중에서도 <공주의 남자>와 같은 역사 왜곡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김종서의 피붙이와 수양대군의 피붙이가 부부의 연을 맺는 이야기라면 대중에게 구미가 당길 법한 소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김종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피붙이는 모두 죽고 여인은 모두 수양대군 수하의 노비가 되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치욕과 수모를 겪으며 살았는데 그런 김종서의 집안이 어찌 수양대군의 피붙이와 살을 섞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김종서 후손들에게 또 다른 치욕을 안기는 일이다.

사실 역사 왜곡의 부작용은 이러한 이야기꺼리를 독자들이 팩트로 믿어버리는 데 있다. 비록 <공주의 남자>가 전혀 근거 없는 창작은 아니다. 계유정난이 일어난 지 420년이나 지난 고종 10년. 서유영이 <금계필담>이라는 설화집을 펴냈다. 그 속에 실린 민담 중에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가 부부의 연을 맺고 숨어살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420년이나 지난 이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만 불구대천의 두 가문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은 그야말로 민담일 뿐이다. 그 민담을 <공주의 남자>에서 다시 왜곡하여 김종서의 손자를 아들로 둔갑시켜 창작했다. 어처구니없는 왜곡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팩트로 인식케 하는 큰 부작용을 낳았다. 따라서 역사물의 창작은 역사왜곡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다음 이야기는 < 안평대군 계유정난에 휘말리다 > 편이 이어집니다.

 

정원찬 작가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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